이동용 (수필가/철학자)
아버지는 호로 일효를, 날 일日 자와 새벽 효曉 자를 썼습니다.
일출을 좋아했습니다. 원효대사의 사상을 이름과 연결시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해 뜨는 장면을 찍어 왔습니다.
그림도 즐겨 그렸습니다. 태양이나 햇빛, 햇살 등을 소재로 한 그림이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대부분 아침을 알리는 고요한 느낌이나 빛의 출현 같은 조용한 이미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사진들은 말이 없었지만,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빛을 담은 사진들, 그 안에는 빛을 빛답게 하는 어둠이 절묘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빛의 탄생은 어둠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빛을 빛나게 해 주는 것은 오로지 어둠뿐이었습니다. 어둠이 빛을 발하게 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사진의 초점이 맞지 않았습니다.
어떤 특정 사물이 흐려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진기를 내게 주며 검지손가락으로 어떤 사물에 초점을 맞춰주기를 요구했고, 내가 그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하면 사진기를 건네받아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노안이 온 것입니다.
뷰파인더 속의 사물을 정확히 응시할 수 없는 시력이 문제였습니다.
86아시안 게임 때, 용돈벌이로 체육관 안에서 행사 상황을 사진에 담아야 했을 때, 아버지는 결국 나에게 사진기를 맡겼습니다. 무엇을 찍으라고 설명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행사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사람들의 움직임은 사물처럼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이 나왔을 때, 아버지는 몇 장을 꼽으며 만족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아끼던 사진기 하나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사진은 신기하게도 내가 바라본 사물을 시공간의 공식에 맞춰 담아냈습니다. 내가 뭘 보았는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수유리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북한산을 등지고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동네입니다. 해가 뜰 때는 산을 등지고 그 반대쪽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거의 매일 해가 뜨기 전에 산에 올랐습니다. 다양한 장소에서 똑같은 태양을 찍었습니다. 무엇을 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아버지의 욕망과 의지가 발견되었을 뿐이었습니다.
한번은 둘째 누나가 일하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날도 아버지는 새벽에 나갔습니다. 돌아와야 할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진 찍고 있겠구나, 하고 아무 걱정 없이 나는 나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산에 올라가 태양을 찍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입니다. 간첩으로 오해를 받아 혼이 났고, 사실대로 말하라며 뺨도 맞았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였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아버지는 꽃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호는 일효를 그대로 썼지만, 그 형상을 꽃에서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꽃 그림을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한쪽 구석에 자식들 이름과 자신의 호를 적어 선물로 주었습니다. 대부분은 장미꽃이었습니다.
어릴 적, 고향집 담벼락을 가득 채운 줄장미의 형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방안에서 그 꽃들을 그렸습니다. 실물의 꽃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상상화였던 것입니다.
기억 속의 꽃 형상은 수많은 꽃들의 모임과 엮임으로 드러났습니다. 누나들 집에 가도 아버지의 그림이 걸려 있고, 형들 집에 가도 똑같은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똑같지만 다른 그림, 참으로 설명하기 힘든 그림들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결과는 거의 비슷한 형상으로 결정되어 있습니다.
가족사진 속의 닮은 얼굴들처럼, 서로 다르지만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그런 그림들이었습니다. 그의 여생은 억울하게 받은 오해의 결과물인 듯했습니다.
태양이 좋아서, 호를 태양과 새벽을 합친 개념으로 사용했던 아버지, 그의 아들 나는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단한 절망을 깨고 태양을 단단丹旦하게 바라보며.














